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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저널=한상희 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명예교수)
윤석열 전 대통령의 내란 사건 1심 판결은 한국 헌정사에 적지 않은 파장을 낳고 있다. 120쪽에 이르는 방대한 판결문은 비상계엄 선포와 국가권력의 행사, 그리고 그에 따른 형사적 책임이라는 중대한 문제를 다루고 있다. 이번 판결은 단순히 한 정치인의 형사 책임을 넘어, 헌정 질서와 민주주의의 작동 방식, 사법부의 역할과 한계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질문을 던지고 있다. 그만큼 법학계에서도 판결의 의미와 한계를 둘러싼 다양한 논의와 평가가 이어지는 상황이다.
여론 역시 한 방향으로 모이지 않고 있다. 시사저널이 2월28일부 릴박스 터 3월1일까지 조원씨앤아이에 의뢰해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 1심 선고에 대해 '형량이 너무 무겁다'(15.1%)거나 '무죄를 선고해야 한다'(18.4%)는 응답과 '형량이 너무 가볍다'(47.1%)는 응답이 압도적 다수를 차지한 반면, '적절한 판결'이라는 응답은 15.8%에 그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번 판결을 둘러싼 사회적 평가가 여전히 엇갈리고 있음 백경게임랜드 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이에 시사저널은 이번 판결을 둘러싼 법학적 논쟁을 독자들에게 보다 입체적으로 전달하기 위해 서로 다른 관점의 두 헌법학자 기고를 함께 싣는다. 판결문의 법리와 논증을 중심으로 문제점을 짚은 글과, 헌정 질서와 민주주의의 관점에서 판결의 의미를 비판적으로 분석한 글을 나란히 소개함으로써 독자들이 이번 판결의 함의를 다 야마토게임 각도로 살펴볼 수 있도록 정리했다.
계엄 선포 443일 만에 내란 사건에 대한 유죄 판결이 내려졌다. 피고인 윤석열에게는 내란 우두머리로 무기징역이, 그리고 김용현에겐 내란 주요임무종사자로 징역 30년이 각각 선고되었다.
이 사건은 대통령'중심'제를 취함으로써 무도한 대통령이 폭압의 독재로 나아갈 수 있는 경로를 마련한 바다이야기게임2 현행 헌법의 한계와 그에 맞선 시민들의 헌법 의지와 저항을 극명하게 드러냈다. 민주화 이후 최대의 헌법 위기였기에 그 극복 과정은 민중(demos)의 지배(cracy)를 재확인한, 당대의 중대 사건이었다. 더구나 권력을 장악한 대통령의 친위쿠데타가 "실패"한 사례는 현 세기 지구촌에서는 매우 드문 일이었다.
그렇기에 이 사건을 다루는 사법 릴짱 의 시각은 남달라야 했다. 친위쿠데타를 가능케 한 현행 헌법의 한계를 말하며, 재발을 막기 위한 법리를 구성해야 했다. 혹한에도 길거리에 나와 몸으로 저항했던 우리 시민들의 헌법 의지를 제대로 담아내는 법적 정의를 말했어야 했다. 최소한, "국민으로부터 나온다"(헌법 제1조 제2항)던 그 권력들이 도대체 어디로 흘러가는지는 제대로 밝혀내어야 했다. 하지만 지귀연 재판부의 판결은 그의 비리하고 지지부진했던 재판 진행 이상으로 우리 시민들의 실망을 자아내었다. 일반 잡범의 경우보다 못한 수준의 판결로써 그 시대적 소명을 저버리고 말았다.
2024년 12월3일 밤 윤석열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 소식을 듣고 서울 여의도 국회 앞으로 몰려 나온 시민들이 계엄군의 이동을 막아서고 있다. ⓒ시사저널 이종현
국회에 군대만 안 보내면 뭐든 괜찮다는 건가
무엇보다 이 판결에는 아무런 시대의식도 없다. 사형제도를 반대했던 시민들조차도 피고인 윤석열에게 사형으로 단죄하라고 요구했던 것은 단순한 자가당착의 분노를 넘어선다. 1987년 헌법 체제는 시민들의 피와 눈물 위에 구축되었다. 윤석열의 내란은 이렇게 힘들게 구성한 우리의 민주공화국에 대한 공격이었고, 그 국가공동체를 이루어온 우리의 삶에 대한 부정이었다. 그것은, 투표로써 그를 신임한 유권자들을 배신하고, 민주 질서를 향한 국민적 합의를 침탈한 패악이었다.
그러나 지귀연 재판부는 이를 외면한 채 그저 퇴행의 길을 열었다. 이 판결에는 권위주의 시절의 망령이 배회한다. 그동안 대법관과 헌법재판소가 누차에 걸쳐 지워냈던 통치 행위라는 개념을 되살려 대통령이 헌법을 넘어 "선출된 독재"(dictature élue)로 나아갈 통로를 마련한 것이다. 더구나 "이 사건의 핵심은 군을 국회로 보낸 것"이라며 윤석열이 국회를 침탈한 점만 부각시킬 뿐, 내란죄의 또 다른 양상인 "헌법 또는 법률의 기능을 소멸시키는"(형법 제91조 제1호) 비상계엄과 포고령의 내용은 아예 제쳐버렸다. 국회에 군대만 보내지 않으면 대통령은 비상계엄의 폭력으로 무슨 짓을 해도(심지어 이승만 대통령처럼 국회의 계엄 해제 요구를 무시하고 장기 집권을 기획해도) 괜찮다는 식의 판단을 서슴지 않은 것이다.
두 번째 과오는 내란 행위를 최소한의 수준으로 수축한 점에 있다. 판결은 내란의 착수 시점을 비상계엄 선포 이틀 전으로 잡으면서 사전, 사후적인 계획이 매우 허술했음을 그 이유로 든다. 노상원 수첩의 증명력을 부인하면서, 피고인이 비상계엄을 언급한 것도 당시의 정치 상황에 대한 불만 정도에 지나지 않는다고 판단함도 그 이유가 된다. 그러다 보니 내란 행위는 집권세력의 조직적 권력 행위가 아니라 당시 야당 주도의 국회가 야기한 정치 상황에 대한 윤석열의 일시적 망동에 지나지 않게 된다.
부연하건대 이 사건은 촘촘한 관료조직과 막강한 군사조직을 갖춘 대통령이 자행한 친위쿠데타다. 그의 일거수 일투족에 100만 명에 달하는 행정공무원의 업무가 달라지며, 45만 명의 상비군의 일과가 요동친다. 계엄의 실시 매뉴얼은 치밀하게 구성되어 언제든지 기계적으로 작동될 수 있는 상태에 놓여 있다. 그의 말 한마디에 전국비상계엄은 모든 국민의 일상을 옥죄는 폭력으로 현실화할 수 있다. 그리고 바로 이런 조직성 때문에 형법은 내란죄를 우두머리와 중요임무종사자, 그리고 부화수행자로 구분해 처벌한다. 더구나 피고인은 이미 수차에 걸쳐 계엄 의지를 드러내었고 노상원 수첩의 상당 부분 또한 현실로 작동했다. 그럼에도 판결은 이런 사실들을 일거에 외면해 버린다.
그 결과 내란의 종식은 요원해졌다. 친위쿠데타를 위해 대통령이 동원할 수 있는 권력과 자원과 조직의 실체를 밝혀내야 더 이상의 재발을 막을 수 있음에도 이 판결은 아예 이 문제에 대한 접근조차 막아선다. 되레 본질상 조직의 범죄인 것을 개개인의 비행으로 해체, 환원함으로써 사건의 진실조차 지워버렸다. 판결에서 국회가 마치 내란의 공동책임을 져야 하는 것처럼 비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시대도 시민도 없는, 재판부만의 혼잣말 돼
셋째, 판결은 내란의 피해를 제대로 밝히지 못했다. 판결은 양형 사유로 물리력 사용의 "최대한 자제" "비교적 적은 수의 군경을 동원" "실제 체포 활동을 하지는 못했다" 등등의 사유를 들면서 법정 최고형을 피했다. 소위 내란 실패론의 반복이다. 하지만, 내란은 판결에서 인정하듯 위험범이다. 계엄이 선포되고 헌정 질서가 교란되는 순간 성립한다. 그래서 윤석열의 내란은 비상계엄과 계엄포고문의 선포로써 완결된다. 단지 시민들의 저항과 군경의 소극적 임무수행으로 그가 원하는 결과를 거두지 못했을 따름이다. 그럼에도 판결은 이런 자명한 명제를 본말전도의 방식으로 교란한다.
이 과정에서 판결은 내란의 가장 본원적 피해자인 우리 시민들을 지워버린다. 계엄의 역사는 여순 사건 이래 피와 눈물의 역사였다. 그런 계엄 사태를 이 민주화의 시대에 낯설게 목도하면서 놀라고, 이를 막기 위해 일상을 떠나 길거리 광장에서 온몸을 던지고, 탄핵과 체포구속과 신속한 재판을 목놓아 외쳐야 했던 우리 시민들은, 지귀연의 재판 진행이 그러했듯 그저 판결의 바깥에서 하릴없이 처분(판결)만 기다려야 하는 피동의 존재로 규정되었을 뿐이다. 포고령에 의해 정치 행위를 금지당하고 집회와 표현의 자유를 침탈당했던 우리 시민들은 이 판결에서조차 국외자로 소외되었던 것이다.
그래서 '내가 보면 안다(I see, I know)'는 식의 이 판결은 시대도 시민도 없는, 재판부만의 혼잣말이 되어버렸다. 내란의 종식은커녕, 그 무도한 대통령의 권력을 이제 사법관이 행사하는 판국을 만들어버린 것이다. "국민으로부터 나온" 권력은 언제든지 국민으로 되돌아가야 하는 것이기에, 내란이라는 전대미문의 폭거를 극복한 우리는 이제 그 저항의 목소리를 다시 한번 다듬어내야 할 듯하다.
특히 최근의 사법 개혁 3대 입법은 이런 요청에 가닿는다. 사법관의 권력을 헌법 아래에 자리매김하고(재판소원제도) 다양한 사법관을 확보해 시민사회와 소통할 수 있도록 하는 것(대법관 증원)은 내란 이후의 민주사법을 열어가는 한 단초가 된다. 성급한 듯하지만 법왜곡죄 또한 사법에 대한 나름의 통제 수단이 될 수도 있다. 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우리 시민의 참여가 보장되는 사법 체제다. 그때야 비로소 우리는 유의미한 내란 종식을 말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한상희 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명예교수
윤석열 전 대통령의 내란 사건 1심 판결은 한국 헌정사에 적지 않은 파장을 낳고 있다. 120쪽에 이르는 방대한 판결문은 비상계엄 선포와 국가권력의 행사, 그리고 그에 따른 형사적 책임이라는 중대한 문제를 다루고 있다. 이번 판결은 단순히 한 정치인의 형사 책임을 넘어, 헌정 질서와 민주주의의 작동 방식, 사법부의 역할과 한계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질문을 던지고 있다. 그만큼 법학계에서도 판결의 의미와 한계를 둘러싼 다양한 논의와 평가가 이어지는 상황이다.
여론 역시 한 방향으로 모이지 않고 있다. 시사저널이 2월28일부 릴박스 터 3월1일까지 조원씨앤아이에 의뢰해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 1심 선고에 대해 '형량이 너무 무겁다'(15.1%)거나 '무죄를 선고해야 한다'(18.4%)는 응답과 '형량이 너무 가볍다'(47.1%)는 응답이 압도적 다수를 차지한 반면, '적절한 판결'이라는 응답은 15.8%에 그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번 판결을 둘러싼 사회적 평가가 여전히 엇갈리고 있음 백경게임랜드 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이에 시사저널은 이번 판결을 둘러싼 법학적 논쟁을 독자들에게 보다 입체적으로 전달하기 위해 서로 다른 관점의 두 헌법학자 기고를 함께 싣는다. 판결문의 법리와 논증을 중심으로 문제점을 짚은 글과, 헌정 질서와 민주주의의 관점에서 판결의 의미를 비판적으로 분석한 글을 나란히 소개함으로써 독자들이 이번 판결의 함의를 다 야마토게임 각도로 살펴볼 수 있도록 정리했다.
계엄 선포 443일 만에 내란 사건에 대한 유죄 판결이 내려졌다. 피고인 윤석열에게는 내란 우두머리로 무기징역이, 그리고 김용현에겐 내란 주요임무종사자로 징역 30년이 각각 선고되었다.
이 사건은 대통령'중심'제를 취함으로써 무도한 대통령이 폭압의 독재로 나아갈 수 있는 경로를 마련한 바다이야기게임2 현행 헌법의 한계와 그에 맞선 시민들의 헌법 의지와 저항을 극명하게 드러냈다. 민주화 이후 최대의 헌법 위기였기에 그 극복 과정은 민중(demos)의 지배(cracy)를 재확인한, 당대의 중대 사건이었다. 더구나 권력을 장악한 대통령의 친위쿠데타가 "실패"한 사례는 현 세기 지구촌에서는 매우 드문 일이었다.
그렇기에 이 사건을 다루는 사법 릴짱 의 시각은 남달라야 했다. 친위쿠데타를 가능케 한 현행 헌법의 한계를 말하며, 재발을 막기 위한 법리를 구성해야 했다. 혹한에도 길거리에 나와 몸으로 저항했던 우리 시민들의 헌법 의지를 제대로 담아내는 법적 정의를 말했어야 했다. 최소한, "국민으로부터 나온다"(헌법 제1조 제2항)던 그 권력들이 도대체 어디로 흘러가는지는 제대로 밝혀내어야 했다. 하지만 지귀연 재판부의 판결은 그의 비리하고 지지부진했던 재판 진행 이상으로 우리 시민들의 실망을 자아내었다. 일반 잡범의 경우보다 못한 수준의 판결로써 그 시대적 소명을 저버리고 말았다.
2024년 12월3일 밤 윤석열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 소식을 듣고 서울 여의도 국회 앞으로 몰려 나온 시민들이 계엄군의 이동을 막아서고 있다. ⓒ시사저널 이종현
국회에 군대만 안 보내면 뭐든 괜찮다는 건가
무엇보다 이 판결에는 아무런 시대의식도 없다. 사형제도를 반대했던 시민들조차도 피고인 윤석열에게 사형으로 단죄하라고 요구했던 것은 단순한 자가당착의 분노를 넘어선다. 1987년 헌법 체제는 시민들의 피와 눈물 위에 구축되었다. 윤석열의 내란은 이렇게 힘들게 구성한 우리의 민주공화국에 대한 공격이었고, 그 국가공동체를 이루어온 우리의 삶에 대한 부정이었다. 그것은, 투표로써 그를 신임한 유권자들을 배신하고, 민주 질서를 향한 국민적 합의를 침탈한 패악이었다.
그러나 지귀연 재판부는 이를 외면한 채 그저 퇴행의 길을 열었다. 이 판결에는 권위주의 시절의 망령이 배회한다. 그동안 대법관과 헌법재판소가 누차에 걸쳐 지워냈던 통치 행위라는 개념을 되살려 대통령이 헌법을 넘어 "선출된 독재"(dictature élue)로 나아갈 통로를 마련한 것이다. 더구나 "이 사건의 핵심은 군을 국회로 보낸 것"이라며 윤석열이 국회를 침탈한 점만 부각시킬 뿐, 내란죄의 또 다른 양상인 "헌법 또는 법률의 기능을 소멸시키는"(형법 제91조 제1호) 비상계엄과 포고령의 내용은 아예 제쳐버렸다. 국회에 군대만 보내지 않으면 대통령은 비상계엄의 폭력으로 무슨 짓을 해도(심지어 이승만 대통령처럼 국회의 계엄 해제 요구를 무시하고 장기 집권을 기획해도) 괜찮다는 식의 판단을 서슴지 않은 것이다.
두 번째 과오는 내란 행위를 최소한의 수준으로 수축한 점에 있다. 판결은 내란의 착수 시점을 비상계엄 선포 이틀 전으로 잡으면서 사전, 사후적인 계획이 매우 허술했음을 그 이유로 든다. 노상원 수첩의 증명력을 부인하면서, 피고인이 비상계엄을 언급한 것도 당시의 정치 상황에 대한 불만 정도에 지나지 않는다고 판단함도 그 이유가 된다. 그러다 보니 내란 행위는 집권세력의 조직적 권력 행위가 아니라 당시 야당 주도의 국회가 야기한 정치 상황에 대한 윤석열의 일시적 망동에 지나지 않게 된다.
부연하건대 이 사건은 촘촘한 관료조직과 막강한 군사조직을 갖춘 대통령이 자행한 친위쿠데타다. 그의 일거수 일투족에 100만 명에 달하는 행정공무원의 업무가 달라지며, 45만 명의 상비군의 일과가 요동친다. 계엄의 실시 매뉴얼은 치밀하게 구성되어 언제든지 기계적으로 작동될 수 있는 상태에 놓여 있다. 그의 말 한마디에 전국비상계엄은 모든 국민의 일상을 옥죄는 폭력으로 현실화할 수 있다. 그리고 바로 이런 조직성 때문에 형법은 내란죄를 우두머리와 중요임무종사자, 그리고 부화수행자로 구분해 처벌한다. 더구나 피고인은 이미 수차에 걸쳐 계엄 의지를 드러내었고 노상원 수첩의 상당 부분 또한 현실로 작동했다. 그럼에도 판결은 이런 사실들을 일거에 외면해 버린다.
그 결과 내란의 종식은 요원해졌다. 친위쿠데타를 위해 대통령이 동원할 수 있는 권력과 자원과 조직의 실체를 밝혀내야 더 이상의 재발을 막을 수 있음에도 이 판결은 아예 이 문제에 대한 접근조차 막아선다. 되레 본질상 조직의 범죄인 것을 개개인의 비행으로 해체, 환원함으로써 사건의 진실조차 지워버렸다. 판결에서 국회가 마치 내란의 공동책임을 져야 하는 것처럼 비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시대도 시민도 없는, 재판부만의 혼잣말 돼
셋째, 판결은 내란의 피해를 제대로 밝히지 못했다. 판결은 양형 사유로 물리력 사용의 "최대한 자제" "비교적 적은 수의 군경을 동원" "실제 체포 활동을 하지는 못했다" 등등의 사유를 들면서 법정 최고형을 피했다. 소위 내란 실패론의 반복이다. 하지만, 내란은 판결에서 인정하듯 위험범이다. 계엄이 선포되고 헌정 질서가 교란되는 순간 성립한다. 그래서 윤석열의 내란은 비상계엄과 계엄포고문의 선포로써 완결된다. 단지 시민들의 저항과 군경의 소극적 임무수행으로 그가 원하는 결과를 거두지 못했을 따름이다. 그럼에도 판결은 이런 자명한 명제를 본말전도의 방식으로 교란한다.
이 과정에서 판결은 내란의 가장 본원적 피해자인 우리 시민들을 지워버린다. 계엄의 역사는 여순 사건 이래 피와 눈물의 역사였다. 그런 계엄 사태를 이 민주화의 시대에 낯설게 목도하면서 놀라고, 이를 막기 위해 일상을 떠나 길거리 광장에서 온몸을 던지고, 탄핵과 체포구속과 신속한 재판을 목놓아 외쳐야 했던 우리 시민들은, 지귀연의 재판 진행이 그러했듯 그저 판결의 바깥에서 하릴없이 처분(판결)만 기다려야 하는 피동의 존재로 규정되었을 뿐이다. 포고령에 의해 정치 행위를 금지당하고 집회와 표현의 자유를 침탈당했던 우리 시민들은 이 판결에서조차 국외자로 소외되었던 것이다.
그래서 '내가 보면 안다(I see, I know)'는 식의 이 판결은 시대도 시민도 없는, 재판부만의 혼잣말이 되어버렸다. 내란의 종식은커녕, 그 무도한 대통령의 권력을 이제 사법관이 행사하는 판국을 만들어버린 것이다. "국민으로부터 나온" 권력은 언제든지 국민으로 되돌아가야 하는 것이기에, 내란이라는 전대미문의 폭거를 극복한 우리는 이제 그 저항의 목소리를 다시 한번 다듬어내야 할 듯하다.
특히 최근의 사법 개혁 3대 입법은 이런 요청에 가닿는다. 사법관의 권력을 헌법 아래에 자리매김하고(재판소원제도) 다양한 사법관을 확보해 시민사회와 소통할 수 있도록 하는 것(대법관 증원)은 내란 이후의 민주사법을 열어가는 한 단초가 된다. 성급한 듯하지만 법왜곡죄 또한 사법에 대한 나름의 통제 수단이 될 수도 있다. 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우리 시민의 참여가 보장되는 사법 체제다. 그때야 비로소 우리는 유의미한 내란 종식을 말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한상희 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명예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