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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미술가 티노 세갈이 국내 첫 개인전이 진행 중인 서울 용산구 리움미술관 인근에서 지난달 27일 국민일보와 인터뷰하고 있다. 그는 작품과 관련한 어떤 물질적 기록도 남겨지는 것을 거부하기 때문에 전시장을 피해 근처 주택가에서 사진을 찍었다. 이한형 기자
그 유명한 ‘생각하는 사람’을 비롯해 근대 조각의 거장 오귀스트 로댕의 인체 조각 작품들이 빙 둘러서 있는 전시장 한가운데서 남녀가 서로 엉겨 ‘키스’라는 제목의 행위예술을 한다. 소셜미디어 광풍이 부는 시대라지만 숨이 멎을 것 같은 이 연극적 순간을 스마트폰으로 찍는 관람객은 아무도 없었다. 바다신2릴게임 행위자의 몸짓에 관람객도 스며들 듯 지켜볼 뿐이었다.
세계적 현대미술가 티노 세갈(50)이 서울 한남동 리움미술관에서 한국 첫 개인전을 시작했다. 세갈은 사진이나 영상 등 어떤 물리적 기록도 남기지 못하게 하는 독보적 콘셉트로 유명하다. 행위예술가들은 현장에서의 시연 이후 사라지는 그 순간을 영구화하기 위해 사진 혹은 영상으로 기록하지만, 야마토게임장 세갈은 그런 기록의 전통조차 거부하며 어떤 물질적 증거도 남기지 못하게 한다. 이번 전시에서도 마찬가지다. 전시 개막에 맞춰 방한한 그를 지난달 27일 전시장에서 만났다.
세갈은 질문이 좋은 작가다. ‘물질적 대상이 없는 예술이 어떻게 존재할 수 있는가’라는 일견 불가능해 보이는 질문을 화두로 삼고 실행 가능성을 증명해온 작가로 인정받았 바다이야기APK 다. 그런 질문이 나오게 된 성장의 배경이 궁금했다.
“어릴 적에 독일의 아주 상업화된 지역, 말하자면 ‘독일의 울산’이라 할 만한 자동차 도시에서 자랐다. 언덕 위에 있는 내 방에서 도시의 생산 시설이 다 보였다. 그 (산업 사회) 시스템이 도저히 지속 가능하지 않아 보였다. 자연을 더 많이 채굴해서 더 많은 것들을 만들어낸다는 것이 지 오징어릴게임 속 가능하지 않다는 생각을 하게 됐고, 그렇다면 ‘무엇으로 대신할지(instead of)’를 생각하게 됐다.”
영국 런던에서 인도계 영국인 아버지와 독일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그는 독일 뒤셀도르프 근교, 프랑스 파리, 다시 뒤셀도르프와 슈투트가르트 등 여러 나라 여러 도시를 오가며 성장기를 보냈다. 대학에서는 정치경제학과 현대무용(안무 바다신릴게임 )을 동시에 전공했다. “학교 선생님들이 68세대였다. 이들의 영향을 받아 녹색운동에 참여했다. 정치경제 문제에 관심이 있었고, 동시에 내 몸을 움직여 뭔가 하고 싶었다. 몸을 쓰는 것은 자원을 추출하거나 재활용하지 않고도 할 수 있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세갈은 2005년 베니스비엔날레 독일관 대표 작가로 초청되며 국제적인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겨우 29세 때였다. 이때부터 사진이나 영상 기록을 거부하는 엄격한 원칙을 확립했다. 2010년 뉴욕 구겐하임 미술관, 2012년 런던 테이트모던 등 현대미술의 양대 ‘성지’에서 개인전을 했다. 37세 때인 2013년에는 베니스비엔날레 최고 영예인 황금사자상까지 받았다. 이후 파리의 팔레 드 도쿄(2016), 바젤의 바이엘러재단(2021) 등 세계 주요 기관에서 초대됐다. 30대부터 지금까지 그의 예술 인생은 꽃길이 분명했다.
무명의 세갈을 단박에 혜성처럼 등장시킨 출발은 24세 때인 2000년에 발표한 ‘20세기를 위한 20분’이다. 남자 무용수 1명이 누드로 20세기 서구 무용 양식의 주요 장면을 20가지로 구성해 파쿠르 형식으로 수행하는 것인데, 본인이 안무는 물론 무용수로 나섰다.
“뉘른베르크에서 초연을 했다. 이걸 큐레이터들이 신체를 통해서 20세기를 회고하는 (퍼포먼스)미술로 여기고 미술 전시에 초대하기 시작했다.”
세갈은 무용으로 발표했지만 안목 있는 큐레이터들이 현대미술로 ‘발견’한 것이다. 현대미술계에 더 확실하게 자리매김시킨 작품은 이번 리움 전시에도 나온 ‘대신(Instead of, 2000)’ 연작이다. 세갈이 ‘해석자’라고 부르는 퍼포머가 전시장 바닥에서 아주 느리게 몸을 비틀며 동작을 하는데, 브루스 나우만과 댄 그레이엄의 몸짓을 연상시키는 움직임을 간헐적으로 수행한다. 나우만은 1960년대부터 자신의 신체를 조각의 재료이자 행위의 주체로 사용한 선구적 미술가다. 그레이엄 역시 1960년대부터 관람자가 전시 공간에서 작품과 맺는 관계를 탐구한 개념미술가이자 행위예술가다. 세갈은 이처럼 처음부터 자신이 안무한 춤을 현대미술의 역사 속에 위치시켰다.
티노 세갈이 큐레이팅한 전시 공간 일부. 오귀스트 로댕의 조각 ‘칼레의 시민’ 뒤로 제프 쿤스의 ‘작은 꽃병’이 보인다. 리움미술관 제공
미술사를 의식하는 이런 태도는 이번 전시의 디스플레이에서도 뚜렷하게 드러난다. 해석자의 몸짓이 ‘살아 있는 조각’처럼 여겨지는 이 전시 공간에 자코메티, 솔 르윗 등 20세기 거장부터 비슷한 연배의 한국 포스트모더니즘 조각가 권오상까지 리움의 조각 컬렉션이 대거 배치됐다. 도도한 조각의 변천사 최전선에 자신이 위치한 느낌을 주도록 세갈이 자신이 직접 큐레이팅했다.
사진과 영상 등 어떤 기록도 남기지 않는 세갈의 원칙은 심지어 작품을 판매할 때조차 ‘서면 계약서’를 남기지 않는 행위로 절정을 이룬다. 비물질성을 끝까지 밀어붙이기 위해서다. 하지만 선사 이래 인류는 생존을 위해 바위에 그림을 그리고, 상행위를 하기 위해 금을 그어 숫자를 표시했다. 인류의 몸에 새겨진 ‘기록의 DNA’를 거역할 수 있을까.
세갈은 “그 부분은 동의하지 못한다. 지식의 전수는 부모 자식 간이든, 학교에서 이뤄지든 상당 부분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일어난다고 생각한다”고 반박했다. 구전 형태의 지식 전수 문화를 전시장에서 경험할 수 있다. 그는 기자에게 “인터뷰가 끝나고 전시장 로비에서 커피를 한 잔 마시며 오래 머물러 보라”고 권했다. 실제로 ‘해석자’ 한 명이 조용히 다가와 자신의 내밀한 이야기를 들려주고 갔다(‘무제’, 2026). 티노가 던져준 문제에 대한 해석자 나름의 얘기를 기자에게 해준 거였다. 이렇게 미술이 물질적 형태 없이 존재할 수 있음을 증명해온 예술 인생이 자랑스러운 걸까. 미술관 입구에서 “이것은 너무 현대적이야!”라고 외치며 경쾌하게 춤을 추는 해석자들이 관람객을 맞는다. 6월 28일까지.
손영옥 미술전문기자 yosoh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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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유명한 ‘생각하는 사람’을 비롯해 근대 조각의 거장 오귀스트 로댕의 인체 조각 작품들이 빙 둘러서 있는 전시장 한가운데서 남녀가 서로 엉겨 ‘키스’라는 제목의 행위예술을 한다. 소셜미디어 광풍이 부는 시대라지만 숨이 멎을 것 같은 이 연극적 순간을 스마트폰으로 찍는 관람객은 아무도 없었다. 바다신2릴게임 행위자의 몸짓에 관람객도 스며들 듯 지켜볼 뿐이었다.
세계적 현대미술가 티노 세갈(50)이 서울 한남동 리움미술관에서 한국 첫 개인전을 시작했다. 세갈은 사진이나 영상 등 어떤 물리적 기록도 남기지 못하게 하는 독보적 콘셉트로 유명하다. 행위예술가들은 현장에서의 시연 이후 사라지는 그 순간을 영구화하기 위해 사진 혹은 영상으로 기록하지만, 야마토게임장 세갈은 그런 기록의 전통조차 거부하며 어떤 물질적 증거도 남기지 못하게 한다. 이번 전시에서도 마찬가지다. 전시 개막에 맞춰 방한한 그를 지난달 27일 전시장에서 만났다.
세갈은 질문이 좋은 작가다. ‘물질적 대상이 없는 예술이 어떻게 존재할 수 있는가’라는 일견 불가능해 보이는 질문을 화두로 삼고 실행 가능성을 증명해온 작가로 인정받았 바다이야기APK 다. 그런 질문이 나오게 된 성장의 배경이 궁금했다.
“어릴 적에 독일의 아주 상업화된 지역, 말하자면 ‘독일의 울산’이라 할 만한 자동차 도시에서 자랐다. 언덕 위에 있는 내 방에서 도시의 생산 시설이 다 보였다. 그 (산업 사회) 시스템이 도저히 지속 가능하지 않아 보였다. 자연을 더 많이 채굴해서 더 많은 것들을 만들어낸다는 것이 지 오징어릴게임 속 가능하지 않다는 생각을 하게 됐고, 그렇다면 ‘무엇으로 대신할지(instead of)’를 생각하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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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영옥 미술전문기자 yosoh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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